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반짝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고갱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 나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갱이’는 식물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뜻하는 말이라 고양이계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고, 한편으로는 화가 고갱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술과는 1도 상관없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의미를 담아 고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제가 지은 이름은 고갱이였고, 엄마와 아빠는 고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언니와 저는 갱이, 혹은 깽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요 「내 동생」처럼 어떤 이름이 진짜인지 모를 정도였지만, 모두 같은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갱이는 러시안블루였고,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러시안블루 100마리 사이에 갱이가 있으면 나는 알아볼 수 있을까?’ 그때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 눈에는 러시안블루가 다들 비슷하게 생겨 보였기 때문입니다.
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러시안블루가 100마리, 아니 1,000마리가 있어도 갱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끔 러시안블루 사진을 봐도 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는 있어도, 갱이가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갱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생김새보다는 그런 느낌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함께 살 때는 100마리 사이에서 갱이를 찾을 자신이 없었는데, 정작 지금은 1,000마리 사이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긴 게 조금 신기합니다. 아마 갱이가 제게 그만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소중해지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사람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특별해진다는 건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반짝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특별히 더 빛나서가 아니라 이미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 이제야 특별함을 구분할 수 있는 설연 드림 - |